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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건축시민투어

지난 7일 부산국제건축문화제에서 주관하고 부산광역시가 주최하는 제11차 도시건축시민투어에 다녀왔다.
향토사학자이자 부산민학회 회장이신 주경업 선생님의 해설로 진행된 투어는 실로 흥미진진했다.

옛날 아미동은 화장장으로 유명했단다. 개항이후 일본인들의 마을인 왜관이 있던 부산을 중심으로 각처에 흩어져있던 그들의 공동묘지를 아미산으로 옮기게하고 화장장도 옮겨왔다고 한다. 그 곳이 바로 아미동 2가 산의 19번지이다.

1909년까지 아미동은 사람이 살지않는 곳이었다. 일본인 공동묘지인 이 곳은 특 1등에서 5등까지 일본인들의 집안 재력에 따라 규모도 다양했다고 한다. 하지만 해방이 되고 일본인들이 서둘러 귀국을 하면서 공동묘지는 방치되었고, 이후 6.25동란이 나고 1.4후퇴로 부산에 피난 온 사람들에게 집터로 제공되었단다. 이유인즉슨 피난열차를 타고 부산역에 내려진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데 부산시 공무원이 나타나 종이쪽지를 주며 이곳에 가 살으라 했단다. 물어물어 찾아간 곳이 아미동 산꼭대기 일본인 공동묘지였던 것이다.
피난민들은 납골당에 있는 묘비를 한쪽으로 치우고 무덤위에 지붕을 얹어 거처할 곳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인들의 무덤은 우리처럼 봉분을 얹지 않고, 땅속에 유골함을 모신 후 좌대로 덮은 다음 비석을 세우고 울타리를 친 형태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피난민들은 무덤위에 지붕을 얹은 후 살게 된다. 그리고 조금씩 형편이 나아지면서 무덤 속의 집구조도 조금씩 개선하고 집터도 넓히지만 무거운 묘비석과 대석들을 어쩌지 못하고 벽에 끼우거나 집밖에 버렸다.

그렇게 남의 집 부엌 밑에 있던 빗돌하나를 감천고개 부근의 대성사의 스님한 분이 절로 옮겨와서 법당곁에 세웠다. '남무묘법연화경'이라고 씌여진 비명이 불교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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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